과잉충성
과잉충성
왕과 열두 명의 신하가 한자리에 모여 중대한 국사를 논의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왕의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아 보였다.
"전하, 전하의 용안에 구름이 짠뜩 끼었습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지요?"
한 신하가 물었다.
"엊저녁에 고래고기를 좀 과식했더니 속이 불편하오. 설사도 나고....."
완은 그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화장실에 갈 겨를도 없이 속옷에다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곧 역한 냄새가 솔솔 피어올랐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쩌나. 내가 옷에다 실례를 했구먼. 속옷 좀 갈아 입고 올터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당황한 왕은 이렇게 말하고는 배를 옴켜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열두 신하들이 동시에 벌덕이러나
재빨리 바지를 벗더니
이어 속옷까지 훌렁 벗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각기 제 속옷을 왕에게 내밀었다.
"전하, 제 속옷을 입으십시오. 오물 묻은 전하의 속옷은 제가 입겠습니다....."
모두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왕은 그들의 원이 너무도 간곡하여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물 묻은 속옷을 벗은 다음,
가장 큰 소리로 읍소하는 내무대 신의 속옷을 받아 입었다.
그러자 나머지 열한 명의 신하는 울상이 되어 더 큰 소리로 읍소 하였다.
"전하,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제속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제발 제속옷을
입어주시옵소서 ......."
왕은 어쩔수 없이, 또가장 큰소리로 읍소하는 군무대신의 속옷을 받아 들었다.
왕이 입고 있는 속옷을 벗으려 하자 내무대신은 절규하듯 더 큰 소리로 읍소하였다.
"전하,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 절대로 제 속옷을 벗으시면 아니 됩니다.
계속 제 속옷을 입고 계셔야 합니다....."
난처한 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더니, 어떨 수 없다는
듯 내무대신의 속옷 위에다 군무대신의 속옷을 껴입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열 명의 신하들은 더 큰 소리로 읍소를 하였다.
"전하, 그러시면 아니 됩니다. 제 속옷도 입으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학무대신의 속옷을 받아 그 위에다 껴입었다.
나머지 아홉 명의 신하들도 더 큰 소리로 읍소를 하였다.
이렇게 해서 왕은 결국 열두 신하의 속옷을 죄다 껴입을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냄새가 지독한 왕의 속옷을 과연 누가 차지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열두 신하는 왕의 속옷을 서로 자신이 입겠다고 또 야단법석을 피웠다.
왕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뜻 말문을 열었다.
"자아, 이제 그만들 하시게나. 과인에게 좋은 방법이 있네. 내속옷을
열두 쪽으로 찢어 한조각씩 나눠 가지게나."
신하들은 왕의 속옷을 가위로 잘라 열두 쪽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신하들은 그 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큰 조각을 갖겠다고 또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왕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혀를 끌끌차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이구, 어찌 이리도 내가 인덕이 없을꼬. 어이하여 내주위에는 시도떄도
없이 알랑방귀만 뀌어대는 아첨꾼들과 간악하기 짝이 없는 간신모리배들만
득실거리는지....
과인은 참으로 복도 많은 왕이로구나. 신하들덕택에 속옷을 열두
개씩이나껴입지를 않나.... 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