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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방

선문답의 이해 | 선법문답

    동산 수초선사에게  중이 물었다.
    “외 길이 멀고 멀 때엔 어찌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날이 개일 때엔 가지 않다가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여러 성인들은 어찌 하셨습니까?”
    “물에도 들고 진흙에도 든다.”
    “마음이 나기 전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람이 없는데 연잎이 흔들리면 분명히 고기가 다니고 있다.”
    “스님께서 사자좌에 오르셨으니 도의 심정을 읊어 주십시오.”
    “마르고 개인 날엔 도랑을 칠 것이거늘 일 없이 조사(曹司)를 마련한다.”

                                                                                     [전등록에서]

 

중과 대사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런 식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무슨 식, 격식, 형식, 법이 있는 게 아니다. 말의 회로가 계속 단절되면서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단절된다. 그리고 이런 단절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단절, 대화의 토막과 토막 사이에 선적 진리, 의미, 무의미가 흐르기 때문이다. 이 공안에 나오는 첫째 대화의 경우 질문과 대답은 모순의 관계에 있지만 이런 모순이 진리를 암시한다.

 

축어적인(literal) 수준에서 ‘먼 외길’은 그냥 ‘먼 외길’이고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축어적으로,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읽으면 ‘날이 개일 때는 가지 않고 비가 올 때 간다’는 말로 모순적인 대답이 된다.

 

그러나 비유적인(figurative) 수준에서는 ‘먼 외길’이 불도(佛道), 수행, 고독한 길을 암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답 ‘갠 날이 아니라 비 오는 날’ 역시 힘든, 고통스런, 고행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둘째 대화 역시 축어적 수준과 비유적 수준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성인들의 행위에 대해 ‘물에도 들고 진흙에도 드는 것’이라는 대답은 축어적인 수준에서는 말 그대로 ‘물에도 들고 진흙에도 드는 일’이지만 이런 말은 이상하다. 도대체 왜 성인들이 물에도 들어가고 진흙에도 들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행동하라는 말인가? 그러므로 비유적인 의미도 중요하고 비유적인 수준에서 ‘물과 진흙’은 상징적 의미를 거느린다.

 

그것은 흑과 백, 이것과 저것, 세속과 신성, 선과 악, 현실과 초월이라는 2항 대립 체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성인들이 물에도 들고 진흙에도 든다는 말은 이런 2항 대립 체계를 초월한다는 의미이다. 좀더 생각하면 이런 사유 체계가 이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성을 초월하는 사유를 강조하고 이른바 불이(不二) 사상을 함축한다.

 

셋째 대화에 나오는 ‘바람이 없는데 연 잎이 흔들리는 세계’, 그리고 이런 세계에 대한 사유가 불이 사상과 통한다. 불이는 하나도 아니고(不一) 다르지도 않다는 것(不異)으로 선종의 중관(中觀) 사상과 통한다. 그런 점에서 “물에도 들고 진흙에도 든다.”는 말 역시 불이 사상과 통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람도 불지않는데 연 잎이 흔들리는 세계에 물고기가 산다. 이런 삶을 깨닫는 것이 마음이 나기 전의 법을 아는 길이다.

 

넷째 대화에 나오는 ‘사자좌’는 부처님이 앉으신 상좌이다. 부처님은 인간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므로 사자에 비유하고 혹은 사자좌는 설법할 때 쓰는 높고 큰 상을 말한다. 따라서 ‘스님께서 사자좌에 오르셨다’는 표현 역시 축어적 의미보다는 비유적 의미, 곧 부처님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셨다는,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그런 자리에서 도(道)에 대해 말씀해 달라는 것.

 

이때 대사의 대답은 ‘마르고 개인 날 도랑이나 치라’는 것, 쓸데없이 조사(曹司), 곧 불법에 대한 공부나 일에 마음 쓰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마음을 죽이고 결국 도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른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이 승훈/한양대 국문과교수,시인]

한뫼님의 글